엎드려 기도드리며
샌프란시스코 부근 데일리시티 언덕, 아침 해 솟아남은 언제나 소리가 없다. 그러나 오늘 도 아침 해는 떠올랐다.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시간이다. 희미하게 드러나는 시곗바늘이 일곱 시를 향해 멈추어 선다. 유리창에 돋아나기 시작하는 차라리 옅푸른 채색 유리창 기둥 열 네 개가 아직 어둔 교회당을 둘러 진 치고 선다. 제단 십자가 바로 위 하늘로 향한 격자창은 한걸음 더 옅은 아침 빛깔로 그 문을 연다. 내가 엎드린 제단으로 모든 시선이 쏟아져 내리고, 나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 끝에 고개를 든다. 나무마루 바닥에 떨어지던 액체 한 방울이 코끝에 머문다.
1. 어떤 사람은 길을 구하고, 어떤 사람은 구실을 구한다. 둘 다 성공할 것이다. 길에 선 사람은 사람을 구하고, 구실을 찾아 든 사람은 혼자 고독한 길로 도망할 것이다.
2. 예수님은 길이다. 예수님 앞에 서면 이 음성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사랑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랑을 믿음은 살려냄이다. 살리고자 한다면 무기를 꼬나 든 천만 명이 두렵지 않다. 심령을 살리고자 한다면, 가정을 살리고자 한다면, 기업을 살리고자 한다면, 피할 수 없는 주님의 질문이 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 사람, 사랑, 삶. 이 세 가지 단어는 하나의 뿌리에서 났다. 국어학도 그렇게 설명하지만 무엇보다도 성경말씀의 바른 뜻이다. 사람은 사랑하면서 살도록 부르심 입었다.
4. 청년 윤동주를 기억한다. 그가 사랑했던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무엇일까? 사랑을 찾되 날마다 실패하는 사람들 아닐까? 어쩌면 거짓 사랑에 취한 사람들일 것이다. 거짓 사랑이 있을까? 어폐가 있다. 사랑이라면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우상숭배다. 사람을 우상으로 보거나 어떤 이념이나 물질까지도 섬김이다. 이건 죽은 사랑이다. 계속 갈증 나는 사랑이다.
부패한 사랑이요, 사람을 죽이는 사랑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참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다. 참 사랑은 살아있다. 그 말은, 사랑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가야 한다. 묘지 터에 뛰노는 아이들을 보라. 죽음의 능선을 넘어가는 새로운 세대를 보아야 한다.
5. 샌프란시스코를 축복한다. 본래 축복이 없던 땅은 아니다. 축복을 버린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 그렇게 물들어 버린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복 내리셨던 샌프란시스코를 축복하는 것은 무릇 사랑으로 살아있는 자들의 특권이다. 기도 중에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지날 때마다 손을 들어 올리고 축복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6. 샌프란시스코의 교회들은 아름답다. 크건 작건 모두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아버지의 집”이며 “기도하는 집”이다. 어떤 때는 길 가다가 멈추어 서서 한없이 예배당을 쳐다본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 계신 이 집을 기억하고 기도한 믿음의 선배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입을 지그시 다문다. 내 손은 땀에 젖고, 가슴은 기쁨에 충만하다. 아버지여, 이 교회와 성도들을 축복하소서!
7. 한번 가고 안 오는 것은 생명이 끊어질 때뿐이다. “이 사람아, 어찌 그리 황망히 떠났는가!” 그러나 무릇 산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거나 고개를 돌려 뒤돌아 볼 수 있다. 가던 발걸음을 돌릴 수도 있다. 산 사람의 길은 그리 급하지 않다. 생각해 보라. 산 사람은 용서한다. 산 사람은 “미안해!” 그렇게 입 끝을 조금만 움직여도 말할 수 있다. 살아 숨 쉬는 사람은 손을 잡을 수 있다. 식지 않은 심장을 가진 사람은 되돌아 올 수 있다.
8. 올해 여름 나는 모스크바 신학교에서 강의했다. 겨우 한 두 마디 배운 러시아어로 인사했다. 상대를 존중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그게 예절이다. 영어를 쓰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공손한 사람들을 만난다. 중국에서 온 사람, 남미에서 온 사람. 온유함이 몸에 배어있는 그들은 각종 악센트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입을 연다. 서로의 입장에 서기를 배우는 나라, 그중에 샌프란시스코는 내 자랑이 되었다.
9. 오늘 새벽예배에 일곱 살 된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나왔다. 그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하니 “아멘!” 했다. 그 목소리가 그의 머리 공명을 통해 내 손바닥을 쳤고, 내 가슴까지 왔다. 나는 그가 아빠에게 좋은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빠의 고단한 날마다 아들의 기도는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같은 시간, 그의 집에서 잠들어 있는 엄마와 세 살 된 딸을 기억했다. 아빠와 아들이 새벽기도 떠난 이부자리를 끌어안고 세상모르게 잠든 그 가정,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을 것이다.
10. 내가 엎드린 새벽 마루는 차갑다. 그러나 마음은 매일 아침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심장 핏줄은 내 주님 계신 하늘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뜨거운 피를 오늘도 나는 공급받는다. 나는 십자가 때문에 오늘을 살아있다.
11.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사는 데일리시티 언덕. 가던 길을 멈추면 교회당 계단이다. 누가 묻는다. 사람아, 그대가 가는 길은 어디까지 가는가? 나는 동쪽을 향한 교회당 문 앞에 서서 두 손을 깍지 낀다. 성전을 사랑하는 열심 때문에 온갖 부조리를 그토록 분노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한다. 타는 가슴을 안고 누가 일으켜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렇구나! 누가 나를 일으킬 것이냐! 예수님이시다.
12. 새벽에 교회를 찾은 그들이 기도를 마치고 아침을 향해 시동을 건다. 대개는 직장으로 직행이다. 가정으로 돌아가 도시락을 싸는 어머니도 있을 테다. 새벽을 기도 중에 깨운 그들에게 오늘도 주님의 축복이 있으라!
13. 묻는다. 오늘 나는 누구인가? 안개비에 젖으며 또 묻는다. 오늘 샌프란시스코에 나는 누구인가? 대답 대신 두 손을 치켜든다. 하늘에 닿도록 가슴을 뻐근하게 편다. 아버지여,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14. 교육관 건축으로 어려웠을 때가 많았다. 정말 어려웠다. 작은 못 하나라도 모두 무거운 무게로 가슴을 짓눌렀을 때였다. 지난 가을 모스크바 선교지에서 응답을 들었다. “너는 종이다. 종이 염려하는 것 보았느냐? 너는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하는 하루살이다. 내일 걱정은 네 몫이 아니다.” 종과 하루살이. 이 깨달음이 나를 고민에서 구했다. 슬픔 중에 눕는 이에게 고한다. 당신은 종이다. 당신은 하루살이다. 새벽이슬 맞으며 천사의 노래를 들었던 목자들은 종이었고, 예수님의 몸에 옥합 깨뜨린 향유를 부은 그 여자는 하루살이였다. 건축의 모든 과정을 마무리하게 하신 주님은 교회의 주인이셨다.
15. 문득 맞은편 벽에 걸린 사진을 본다. 우리교회 어떤 형제가 요세미티 계곡을 찍은 것이다. 맑차게 쏟아져 흐르는 물길을 보면서 스스로 묻는다. 이 물이 가는 곳은 어딘가?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이 마신다고 했다. 내 음료수가 되는 것이다! 저런 맑찬 흐름에 나를 맡긴다. 찬란하게 빛나는 흐름, 그 격렬한 율동에 수면이 되어 흐르는 나뭇잎 한 장처럼, 나는 계곡을 빠져나와 세상을 향해 질주한다. 내 길은 생명의 길. 나는 사람을 살리는 길로 들어섰다.
16. 데일리시티 언덕에 서서, 아침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를 축복한다. 누구의 말이다: 석양이 아름다운 것은 구름이 있는 까닭이요,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슬픔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낭만적이어서 모든 슬픔을 미화할 가능성이 있다. 해서 이렇게 바꾼다: 해돋이가 아름다운 것은 기도가 있기 때문이요,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 때문이다.
17.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시편 3:5, 8)
조은석 목사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 (2010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