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성경읽기
2006년 여름, 나는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차로 한 시간 반 내려가는 소도시 후사가수가에 있었다. 2002년부터 해마다 한 두 차례 방문해서 성경을 강의하는 신학교가 있다. 매번 40여 명의 신학생들을 만나 강의해 왔다.
그런데 그해 여름, 해가 막 지기 시작하는 오후에 나는 금문교회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콜롬비아 선교를 위해 쏟는 열정에 비하여 금문교회 성경공부는 어떤가? 콜롬비아 신학교에서 그동안 나는 주로 영어로 강의했고 통역자가 스페인어로 도와주었다. 그렇지만 통역의 불편함을 떨치기 위해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고, 벌써 2년 반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시립대학에서 18학점을 이수했고, 3학점 공부 중이다. 지금은 전공분야의 경우 사전의 도움을 받지 않고 거의 읽어낼 수 있으며, 더듬거리면서 하라면 강의도 어떻게 해 볼 수 있다. (본래 나는 외국어로 말하는 데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Better than never! 늘 곱씹으며 오늘 여기까지 왔다. 공부 안 한다면 이것도 모를 뻔 하지 않았느냐? 늙은 학생이라는 부담을 던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금문교회는? 한국말로 강의하는 성경공부반이 활기가 없다. 한국말은 내 모국어 아닌가? 해거름 시간에 병풍처럼 펼쳐진 안데스 산맥을 바라보면서 기도했다. 주여, 제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시야를 가로막은 산맥이 점차 어두운 그림자를 품었다. 그런데 곧 여기저기서 별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등불을 켜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펼쳐진 밤하늘 같았다. 하늘이 내려와 여기 펼쳐져 있는 것이다!
문득, 저 안데스 산맥을 넘어가면? 그런 상상이 들었다. 그 상상을 도와준 것은 집집마다 켠 등불이다. 저 산을 넘어가면 아마존 강이 흐르는 대평원이 펼쳐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와 동갑내기 신학생이 안데스산맥 꼭대기 시골교회에서 담임목회하고 있다. 그의 말이다. 아마존! 나일강보다 유프라테스강보다 훨씬 넓고 깊으며 생명을 품고 인류의 마지막 젖줄로 흐르는 아마존. 거기를 가기 위해서는 안데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산을 넘는 수고. 그것을 성경공부에 비교해 보자.
첫째는, 성경 안으로 들어가기다. 우선 기도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언어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한국어는 물론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 라틴어 그런 언어공부의 산이다. 아울러 역사, 문학, 수사 같은 공부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성경의 세계를 다닐 수 있다.
둘째는, 아마존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다. 거기서 영원히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도하면서 다시 산을 넘어야 한다. 그때는 오늘 여기에 대한 관심과 열정, 내 목회 범위에 있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필수다. 돌뿌리를 차는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이유다. 왜 돌아가야 하는가? 대개 성경연구에 빠지면, 그냥 거기 머물고 싶은 생각이 크다. 혼자의 즐거움이다. 그렇지만 그걸 나눠야 한다. 그러면 언어도 사고도 일반인의 눈높이로 조절해야 한다. 나는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인을 바탕으로 다인종 목회를 꿈꾼다. 그렇다면 오늘의 컨텍스트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누구며, 어떤 필요를 품고 매일 살아가는가? 하나씩 더듬어 확인한다. 그렇게 산을 넘어 여기로 돌아오면, 내게 주신 사명이 기다리고 있다. 안데스 산맥을 가운데 두고, 나는 아마존과 후사가수가를 오갔다. 이것이 성경공부의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콜롬비아성경읽기>라고 이름붙였다. 3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자를 썼고, 금문교회 대예배실 자리마다 배치해 두었다.
올해 8월 10일, 나는 다시 콜롬비아로 날아간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모세오경을 강의할 예정이다. 두 권의 교재를 50권씩 구입했다. 다른 한 권은 일부를 복사해서 제본할 예정이다. 그들의 언어를 가지고 가는 마음. 그들과 함께 저 안데스 산을 등산할 마음. 벅차고 기쁘다. 이미 시작한 금문교회 지파목회. 청년부 4개, 신혼부 3개, 장년부 4개, 영어부 2개. 이들 지파장들과 함께 넘는 안데스 산맥. 내 마음은 기쁨의 파도를 타고 넘는다. 마천에서 오르던 지리산처럼, 곁에는 폭포수가 소리내며 흘러내리는 숲이다. 함께 등반하는 기쁨. 이것이 나를 성경을 가르치는 목회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